[성당]

순교 유형별로 본 103위 성인

원모래알 2012. 6. 27. 16:24

 순교 유형별로 본 103위 성인

 

옥중치명(獄中致命)

일명 옥사라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치명 중에서는 쉬운 것같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다. 당시의 옥벽은 토담을 두껍게 쌓고, 조그만 창구멍을 하나 내 놓았을 뿐이었는데, 이곳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겨우 밤낮을 구별할 정도였다.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옥 안은 겨울에는 지독히 춥고, 여름에는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으며, 땀으로 범벅이 된 상처들은 자연 덧나거나 썩기 마련이었다. 죄수들이 먹을 양식이 관가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중간에 다 없어지는 경우가 허다했으므로, 죄수들은 캄캄한 옥 속에서 짚신을 삼아서 옥리를 통해 팔아 밥을 사 먹었다. 그런데 모든 교우들이 그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문초를 받느라 부러지고,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고 상처가 덧나고 수개월씩 먹지 못하니 영양실조로 눈이 어두워지지만, 그래도 허기를 면하고자 거적을 뜯어 먹는 참상을 겪다가 피골이 상접하여 죽어나가곤 했다. 순교 성인 103명 중에서 배교한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언제라도 석방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 말 한마디를 아니 하고 옥중에서 참혹히 죽어간 성인은 9명이다.

 

군문효수(軍門梟首)

대역죄인이나 나라에서 금지시킨 법을 중죄인에게 사용되던 방법으로 병영(兵營)이나 수영(水營)이 있는 곳에서 군에 의해 공개적으로 형이 집행되었다. 집행과정은 먼저 사형수를 군대가 형장까지 대오를 지어 옮겨간 후, 사형수의 얼굴에 회칠을 하고 양팔을 등 뒤로 묶고 어깨 밑으로 긴 막대기를 끼워 여러번 형장 주위를 끌고 다니다가 큰 소리로 죄상과 판결문을 낭독한 다음 양쪽 귀에 화살촉을 위로 가게 꿰고 사형수의 옷을 벗긴 다음 목을 베었다. 주로 신부들과 간부회장들이 이렇게 치명했으며 같은 죄를 짓지 않도록 경고하고 겁을 주는 의미로 목을 군문에 높이 매달아 놓았다고 한다. 103위 성인 중 군문효수로 순교한 성인은 16명이다.

 

참수치명(斬首致命)

참수형이란 글자 그대로 목을 잘라 죽이는 것이다. 이는 십자가에 사형수의 머리와 양팔을 묶어 감옥에서 형장까지 우마차로 호송한 뒤 사형수의 옷을 벗기고 나무토막 위에 머리를 받친 후 목을 베는 형벌이다. 참수형을 당할 때 사람의 목을 자르는 사람을 희광이라고 하는데 그는 짚으로 만든 치마를 두르고, 양 손에 칼을 든 채, 칼춤을 추며 돌아다니다가 사형수의 목을 쳤다. 하지만 그 칼이 칼날이 아니라 삽과 같이 무딘 것이어서 한 번에 목이 잘라지지 않았다. 희광이는 사형수를 그렇게 내버려둔 채 구경꾼들에게 손을 내밀어 삯을 받았다. 구경값을 더 내야 저 목을 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돈을 걷고 칼춤을 추며 돌아다니다가 한 번 치고(칼맞은 사람을 고통 중에 있고) 또 돈을 걷고 칼춤을 추기를 78, 거의 10여번만에 목이 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도 여덟 번 만에 목이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참수치명을 당한 순교 성인은 60명이다.

 

교수치명(絞首致命)

교수치명은 목을 옭아 죽이는 것으로 주로 옥 안에서 그 형이 집행되었으며 가장 쉬운 방법이었고 고통도 적은 편이었다. 많은 교우들이 이 교수치명으로 신앙을 증거했는데, 순교 성인 중에는 15명이다.

 

장하치명(杖下致命)

 

장정들이 몽둥이를 들고 둘러서서 머리만 빼 놓고 두들겨 패서 죽이는 형이었다. 죽음을 맞은 순간까지의 고통이 극에 달했다. 그래서 일반 죄인들도 참수형이나 교수형을 당하면 당연히 죽을 것으로 알고 체념하지만 장살을 당하면 원한을 품게 된다고 했다. 순교 성인 중에 이 형으로 순교하신 성인은 3명이다.

 

그 외의 순교 유형

 

백지사(白紙死)

손을 결박하고 얼굴에 물을 뿌린 후 창호지를 얼굴에 붙이고, 또 물을 뿌리면 종이가 착 달라붙어 숨을 쉴 수 없어 죽게 된다.(여산에서 순교한 이들 중에 백지사를 당한 이들이 많고 백지사 터가 보존되어 있다)

 

생매장(生埋葬)

사형시킬 천주교도가 너무 많아 참수나 교수로 일일이 죽일 수 없어 생겨난 방법으로 1020명씩 산채로 묻었다.(서산 해미에는 생매장 터가 있다)

 

태기

돌 위에 자리개질을 하여 죽임.(해미성 밖에는 자리개질을 했던 터와 자리갯돌이 보존되어 있다)

 

들보형

아름들이 들보를 높이 달아 놓고, 그 아래 여러사람을 일렬로 뉘어 놓고서 들보를 떨어뜨려서 한 번에 머리를 짓이겨 죽였다.(병인박해 말기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육시 혹은 능지처참

사람의 팔, 다리, 머리에 각각 소 한 마리씩을 붙들어 배고 각 방면으로 소를 몰아 찢어 죽이는 것으로 가장 참혹한 형벌이다.(백서사건으로 붙잡힌 황사영이 이렇게 순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