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누구나 나자렛의 성가정을 닮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고, 또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것이다.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아들 예수, 그들이 이룬 성가정은 어떤 모습일까? 하느님에 대한 신심으로 똘똘 뭉쳐 열심히 기도하고 일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호수처럼 잔잔한 평화를 누리며 사는 평화로운 가정이었을까?
나자렛의 성 가정은 시작부터가 순탄치 않았다. 요셉은 마리아가 누구의 애인지도 모르는 애를 가진 것을 알고는 조용히 헤어지려 했지만 그것 또한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 아이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아이’라는 괴상하고도 황당한 꿈 때문이었다. 아무리 신심이 깊다고 하지만 이 꿈을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많은 고민도 했으리라. 어렵게 마음을 정했지만 엄동설한에 여관방 하나 구하지 못하고 마굿간에서 첫아이를 낳아야 하는 사랑하는 아내 마리아를 지켜보는 요셉의 마음은 어떠했을까?‘돈이라도 많았으면 갑절의 돈을 지불하고라도 방을 구했을 텐데’하고 자신의 무능을 탓하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어렵게 얻은 자식, 두 돌도 되기 전에 피해망상증에 걸린 헤로데가 무고한 어린이들을 향해 휘두르는 학살의 칼날을 피해 물설고 낯설은 이국땅 에집트에로의 피란길.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만 말하지 않았어도 겪지 않아도 좋았을 시련. 하느님께 선택받은 여인이라는 이유로 평생을 정결을 지켜야 했던 요셉. 결코 평범한 사람들은 흉내도 낼 수 없는 일들이다.
고향에 돌아와 이제 편히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사흘 밤낮을 찾아낸 잃어버렸던 아들의 “왜 나를 찾았느냐?”,“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 몰랐느냐?”고 무시하며 반항하는 듯한 아들의 태도를 그저 묵묵히 마음속에 새겨야 했던 어머니 마리아.
하나 밖에 없는 아들, 훌륭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이야 자식 가진 여느 부모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런 아들이 성인이 되어서는 전교한답시고 집안일은 거들지 않고 하층민들과 어울리고 죄인들과 창녀들과도 스스럼없이 먹고 마시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급기야는 친척들 간에도 아들이 미쳤다는 소문이 돌고.
소위 모범 신앙인들이라 자처한 기득권자들의 최고기관인 산헤드린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예수에게 무지한 사람들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체포령을 내리고. 그런 불길한 소문에도 아랑곳없이 전교활동을 하는 아들을 찾아 나선 심란하기만 한 어머니 마리아. 분별없어 보이는 아들 예수는 이런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떤 누명을 씌우든지 자기를 죽이려고 벼르고 있는 굶주린 이리떼 같은 산헤드린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이 어떻게든 그들과 잘 타협하여 무사하기만을 기도하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예수는 자기를 죽이려고 작정한 이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하늘나라를 선포했으며,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았다. 결과는 신성모독죄. 사형이었다. 정치범들에나 적용되던 가장 악날한 처형방법인 십자가형에, 한창 혈기왕성한 삼십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치욕적인 벌거벗은 모습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숨을 헐떡이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찢어지는 마음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나자렛의 성가정은 그렇게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폭풍우 속의 일엽편주 같은 삶이었으며 온갖 시련과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가녀린 시골 여인 마리아는 성령과 함께 자신에게 닥친 모든 불이익과 수모, 고통을 오직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 순명하고 참아냄으로써 모든 소외받고 버림받은 이들의 어머니, 죄인들의 어머니, 도망자들의 어머니, 사형수들의 어머니, 믿는 이들의 어머니가 되셨다.
우리가 성가정을 염원한다면, 마리아처럼 자신에게 닥치는 이 모든 시련을 하느님께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하느님의 섭리로 알아듣고 받아들여야만 가능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며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 하는 삶이 아닐까? 그렇게 할 때 고통은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며, 하느님 안에서 참 평화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가끔은 성가정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이 모든 고통들을 겪을 각오는 없이 내 일신의 안일을 구하는 기도가 하늘에 닿을 수 있을까? 과연 내게도“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하고, 내게 닥치는 모든 고통과 시련들을 은총으로 승화시키며 온 마음으로 성가정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할 날이 올수 있을까?
'[성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 새해 첫 날-도림성당에서 (0) | 2013.01.02 |
---|---|
2012 서귀복자성당 구유 (0) | 2012.12.29 |
Merry Christmas! (0) | 2012.12.24 |
어느덧 11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0) | 2012.11.30 |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0) | 2012.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