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세례와 견진 그리고 적폐

원모래알 2017. 11. 7. 18:09


한국천주교회사에 보면 세례를 받으려고 한양에서 평양에까지 걸어간 예비자 이야기가 나온다.

그 당시에는 물론 내가 세례를 받을 때만해도 찰고라는 게 얼마나 떨리는 관문인지

달달 외우고 있던 문제도 막상 질문을 받으면 머릿속이 햐얘져서 대답을 못하곤 했다.


이 예비자도 예외는 아니었나보다. 그 먼 길을 걸어갔건만 그만 찰고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당시에는 사제를 평생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는데...

웬만하면 성의를 봐서라도 통과시켜주실 일이지 야박한 생각이 글을 읽는 내게까지 전해 온다.


나 같으면 더러워서 세례 안받는다고 그만 뒀을 텐데,

그 예비자 다시 열심히 공부해서 기어이 세례를 받았다는 감동어린 기록이 있다.

이런 걸 보면 우리의 신앙선조들은 우리와는 확실히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거 같다.


꽤 오래 된 얘기지만 같은 지역의 지인께서 견진교리를 받고 있었다.

한 번이라도 빠지면 견진성사를 주지 않겠다는 주임신부님의 엄명이 있었다.

그는 다른 어떤 일보다도 우선으로 시간을 배정하고 열심히 교리를 받았다.


마지막 두 번을 남겨놨을 때 공무원이었던 그는 일본 출장 명령을 받았다.

견진을 받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웠지만 공무원으로서 거절할 명분도 빽도 없었는 그는 출장을 갈 수밖에 없었다.

출장을 다녀오고도 한 번을 더 참석할 수 있었지만 주임신부님의 엄명이 있었기에 당연히 받지 못할 것으로 알고 출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견진성사 때 자기보다 더 많이 빠진 사람이 성사를 받는 게 아닌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사제가 거짓말을 했단 말인가?

사제의 말만 철석같이 믿었던 자기만 바보가 된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사제에 대한 신뢰도 교회에 대한 믿음도 다 버리고 상처를 안은 채 오늘도 교회밖에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이라 하는 안철수.

30년 전에 받은 교리를 인정받아 세례를 받았다는 핫한 뉴스를 보면서 참으로 어처구니 없어 하는 이는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30년 전에 뭘 어떻게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시효가 참으로 매력적으로 길다.

임종 직전에 있는 이에게 주는 대세가 아닌 이상 이런 경우는 전대미문이다.

공당의 대표로서 이런 특혜를 누리는 것에 대해 아무 거리낌이 없었을까? 

이런 게 쌓여서 적폐가 되는 게 아닐까? 이런 먼지들이 지난 70여년 동안 켜켜이 쌍여 돌이 된 게 아닐까?

이런 것들이 보다 공정한 사회를 위하여 우리가 청산해야만 할 적폐 아닐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적폐청산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사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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